미투운동을 대하는 남자들의 자세

By 2018년 3월 25일WE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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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를 둘러싼 온도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있다. 특히 남자들이 그렇다.

처음에 몇 사람의 성범죄가 폭로되었을 때는 이견의 여지 없이 피해자를 옹호했으며, 몇몇 ‘꽃뱀론’을 설파하는 남자들이 있었지만, 대체로 피해자 친화적인 정서가 우세해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온도차이가 생긴다. 일단 ‘미투운동이 변질됐다’는 담론이 퍼지고 있으며, 미투를 조롱하는 듯한 남자들의 패러디로 쏟아진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일단 자신들이 좋아하는 정의롭다던 정치인들이 연루되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나 거물급이나 상징성을 가진 정치인과 관련된 경우에는 더 격렬하게 피해자를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여기에는 특정 진영 정치인들에 대한 미투 폭로가 상대 진영의 공작일 거라고 주장한 ‘한 팟캐스트 진행자’의 주장이 큰 영향을 줬을 것이다.

그리고 또하나의 원인은 이제 점점 미투의 범위가 자신들이 과거에 했던 행위들과 겹치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저게 성범죄면 나도 성범죄자냐? 대한민국 남자 다 성범죄자겠네’

라는 것이 이 사람들의 기본적인 정서다. 그런 ‘사소한’ 허물을 폭로해서 이슈를 만드는 것은 불온한 의도를 가진 탄핵 반대세력의 음모이거나 경제적 이득을 위한 ‘꽃뱀’의 공작일 거라는 생각일 것이다. 이상 두 가지가 미투지지=>반대로 이어지는 정서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사건의 진위나 의의, ‘피해자의 순수성’을 논하기 전에 우리 모두 솔직해지자. 남자들이 보아오던 여성을 대하는 방식, 그리고 은연중에 퍼져있던 여성에 대한 비하와 폭력, 그리고 ‘괴짜’라고 불리던 성범죄자들을 몰랐다는 말은 하지 말자. ‘나는 전혀 몰랐고 결백하다’고 주장하는 남자는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면 미취학 아동이다.

조금이라도 유명해지거나 지위가 올라간 소인배가 자기 주변의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우리는 대강 알고 있다. 왜 알고 있을까? 이런 사람 한둘 모르고 평생을 살기에는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엄존하는 문제를 모른척 하거나 정 반대로 인식하는 정서의 바탕에는 타인을 짓밟음으로써 자신의 지위와 안전을 확인받으려는 정서가 있다. 예를 들어 미투라고 하면, 우리의 ‘꽃같은’ 여성들의 ‘정조’를 ‘유린’한 남자들을 정의로운 ‘남자’로서 ‘응징’하는 선에서 모든 남자들이 지지했을 것이다. 응징과 집단 린치의 주체로서 남성들은 안전과 확보된 지위를 느낀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다. 여성들은 ‘힘센 오빠’가 몇몇 엽기적인 범죄자를 때려잡아 주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권력형 성범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탓하기 시작했고, 그 구조의 일원으로서의 남자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일순간에 남자들은 ‘정의롭고 힘이 있는 집단’의 일원에서 응징의 객체로 내던져진 것이다.

남자들은 억울하다. 그들 스스로 ‘꽃같은 여성’을 ‘유린’ 하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애초에 성범죄의 핵심은 ‘꽃’이나 ‘유린’ 아니고 ‘권력’과 ‘관습’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런 판단착오에 기여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류가 생긴다.

 

‘A라는 행동은 성범죄인가?’ 라는 질문에

‘나는 A라는 행동을(많이) 했다’ – ‘나는 성범죄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A는 성범죄가 아니다’

라는 3단논법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남자들이 미투 국면에서 해야하는 행동은 간단하다. 딱 3개로 요약 할 수 있다.

  1. 미투 이슈에 비추어 과거를 돌아본다.
  2. 잘못이 있거나, 잘못을 지적받으면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3. 앞으로 잘 행동하기 위해 노력한다.

과거 폐쇄된 환경에서 발생한 사건을 입증하거나, 의도의 순수성 등을 실명을 걸고 입증해야 하는 여성들에 비하면 공짜나 다름없다. 그런데 그걸 못하겠다는 것이 현재 남자들의 입장이다. 심지어 펜스룰이라는 말이 뭐 얼마나 진지한 시사용어인양 회자되고 있다.

펜스룰이란 ‘관습적 성범죄의 지속 의지’를 뜻하며, 주변에 여성이 존재하는 한 이 관습적 성범죄를 멈출 수 있는 자제력이 없다는 자기고백이다. 펜스룰이 꼭 필요한 사람이라면 먼저 의사와 상담하길 바란다.